2009년 10월 20일
[렛츠리뷰] 검은별 - '복고'라 불리는 것.
드디어 렛츠리뷰에, 그것도 꽤 보고 싶었던 책에 당첨되는 행운을 얻었다!
따지고 보면 이게 다 아들래미 때문이니 복덩이는 맞는 것 같다. ( '')
...사실 읽은 시간으로 보면 가장 먼저 리뷰를 쓸 수 있었던 것 같은데, 결국 정신차려보니 시간이 이만큼 지나 있었다. 이러다 영영 못쓰고 두번다시 렛츠리뷰에 당첨 못 되지 싶어 후닥닥 써서 올리는 리뷰글. 어차피 비평에는 재능이 없고, 전문적인 지식을 동원할 정도로 박식한 것도 아니니 가볍게 쓴다. 쓰는 데 의미가 있는 거다, 그런 거다 ㅠ^ㅠ;;
# 0.
그동안 관심도 안 뒀던 렛츠리뷰에 드디어 보고 싶은 책이 떴다. 80년대에 아동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대부분 기억할, 대두(大頭)들을 일컫는 '모여라 꿈동산'이라는 단어의 유래- 인형극 프로 '모여라 꿈동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인 검은별의 원작이라니 신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작가는 조로의 원작자인 존스턴 맥컬리. 어렸을 때 읽은 조로 소설도 꽤 재미있었기에 주저없이 신청했다. (뭐라고 썼는지는 물어보지 말라. 어떤 인간이라도 이불속에서 하이킥할 자유 정도는 필요하다 -_-)
그리고 운좋게 당첨이 되었다.
# 1.
렛츠리뷰 당첨자 발표가 난 다음날, 바로 책을 받았다. 책을 받았을 때가 마침 수유타임이었는데, 젖먹이면서 절반을 읽고 애를 재우면서 나머지 절반 중 반을 읽고 애가 자자마자 나머지를 읽어버렸다. 원래 내가 활자에 몰입도가 높은 편이긴 하지만, 책 자체도 재미있는데다가 쉽게 잘 읽힌다. 읽고 나서도 딱히 뒤끝이 남는다거나, 입안에 쓴맛이 돌게 불쾌해진다거나 하지 않는다. 깔끔하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신 기분이다. (...수유중이라 못 마신다. 마시고 싶다. ㅠ^ㅠ)
# 2.
이 이야기는 소개글에 씌여 있는 대로, 백만장자에 모험을 즐겨하는 버벡과 불가능한 범죄행각에 도전하는 범죄자 검은별과의 대결 구도를 그리고 있다. 사건이 일어나는 정확한 시간과 배경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저자의 약력과 이 작품이 공개되었던 잡지 등으로 미루어 보아 대강 1900년대 초반, 미국 어느 도시라는 점을 유추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어 나갈 사람들에게 이 점은 꽤 중요하다. 이 책은 '살인사건이 시시때때로 수도 없이 일어나는 삭막한 21세기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 최신간 추리소설이 아니다. 이 소설은 아직까지 로망과 모험과 (그리고) 가쉽이 통하던 20세기 초반의 이야기이며, 각박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자칫 한없이 지루하고 뻔한 이야기가 될 만한 소지가 다분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에는 노이즈로 뿌옇게 물들어 애수를 자극하는 고전영화를 볼 때와 같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싸구려 담배를 물고 코트깃을 세운 채 하드보일드한 대사를 내뱉는 사립탐정이 나오는 고전 추리소설을 보면서 우리의 머리를 갈고 닦을 최신 트릭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정석 아닌가. 이 책을 읽을 때에는 마음을 비우고 이 호기로운 백만장자 버벡이, 과연 다음에 무슨 일을 할지 친절하게도 자세히 떠벌여 주시는 당대의 괴도(이 얼마나 향수어린 단어인가!) 검은별을 어떻게 감옥에 잡아넣을 것인가를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가면 된다. 트릭이 단순한 건 다 시대의 탓으로 돌리자. =D
# 3.
인물들은 평면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전형적이다. 백만장자이면서 모험을 즐기는 버벡, 뒷골목 출신으로 버벡에게 충성을 다하는 하인 머그스, 자신만만하고 빈틈없는 괴도 검은별. 버벡의 약혼녀나 경찰서장, 중간에 나왔던 형사 라일리를 비롯한 그 외의 여러 등장인물들 역시 배신이나 암투나 음모나 심도깊은 정체성의 고민 따위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상할 정도로 자신의 원칙에 충실한 인물들은 지금의 기준에서 보면 바보스러울 정도로 멍청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부분이 이 소설에는 더 어울리는 듯 하다. 흰색과 검은색으로 구분되는 선과 악의 대립구도를 보여주는 데 있어서 같은 편 안의 음모와 배신으로 대변되는 회색을 끼워넣는다면 오히려 이 소설의 경쾌한 리듬이 사라졌을 테니까.
그런 고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모든 건 다 시대의 탓이다. 마음을 비우고 읽자. =D
# 4.
책 자체는 괜스레 하드커버 양장을 고집하거나 화려한 북아트 수준의 더블커버 등을 고집하지 않아 들고 보기도 나쁘지 않다. 내부 활자가 크고 여백이 넓은 점이야 요즘 책들이 가진 공통점이니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비교적 오밀조밀한 맛이 살아 있어 나같은 문자광(...)들에게 싫은 소리를 들을 만큼은 아니다. 본문 내 모든 챕터의 소제목 표시의 숫자 뒤 .이 작은 검은별로 바뀌어 쓰인 것은 정말 멋진 센스의 이스터 에그. 오가는 편지를 모두 타이핑으로 살린 폰트 센스도 깔끔하다.
다만 표지에 대해서는 한마디 하고 싶다... 팝아트스러운 일러스트 표지도 좋지만, 아무래도 이 글 자체가 1920년대에 나온, 나름대로 고전이라면 고전이다 보니 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표지 일러스트가 나같이 심플한 걸 좋아하는 인종에게는 참으로 비호감이다. 서점에서 봤으면 모르고 넘어갈 뻔 했다. -_-) 오히려 검은별이라는 느낌을 살려서 그냥 검은색 표지에 별 모양 하나만을 형압으로 박아 에나멜 처리를 하거나, 흰 표지에 검은별 문양만을 써서 디자인하는 쪽이 좀더 어울렸을 것 같다. (만져보니 표지 일러스트의 검은 별들은 전부 형압이 되어 있더만... 표지가 너무 복잡해서 티가 안난다. ㅠ^ㅠ)
# 5.
트릭을 다 풀 수 있을 정도로 명민한 머리를 가진 건 아니었음에도, 미스터리나 추리소설을 꽤 좋아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슬슬 이 장르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건 현대로 접어들면서 미스터리나 추리물이 너무나 과격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의 죽음에서 시작하는 미스터리, 언제나 살인사건 현장에서 나타나는 탐정들, 트릭을 풀지 않으면 살아나갈 수 없는 함정들의 연속이 내게는 너무나 살벌하게 느껴졌다. 간혹 읽고 나서도 뒷맛이 쓴 소설들을 몇 편 접하고서는 이 장르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던 것 같다.
그리고 오랜만에 검은별을 읽고 나서 깨달았다. 나는 아직까지도 로망이라는 것이 통하던 시절의 작품을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고. 누구도 죽이지 않고 보석만을 빼가는 신사적인 괴도 뤼팽이나 현장의 단서에 편집증적으로 집착하는 탐정 홈즈, 젊음과 혈기로 무장하고 사건에 뛰어드는 소설가이자 탐정 엘러리 퀸, 항상 사람을 바보 취급하며 회색의 뇌세포를 자랑하는 탐정 포와로. 여기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분명 현대에도 일어나고 있음직한 일임에도, 누가 소설보다 더 잔인한 살인사건의 타겟이 될 지 알 수 없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런 소설 속의 사건은 선혈이 낭자하고 등골이 서늘한 사건이라 할지라도 그저 오래되어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한가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 면에서 검은별은 그 태평함과 한가로움의 진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절대로 사람을 해치지 않는 괴도, 그 괴도를 쫓는 백만장자, 백만장자를 보좌하는 뒷골목 출신의 충직한 하인. 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낸들 현실감이 생기겠는가. -_-;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스토리 전개는 단순하지만 훌륭하고, 인물들은 전형적이고 평면적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정감이 간다. 마치 우스꽝스럽지만 친숙하고, 촌스럽지만 낯익은 기분을 가져다 주는 80~90년대의 패션 카달로그를 보는 기분.
나는 그것을 '복고'라 부르고 싶다.
그래서, 존스턴 맥컬리의 '검은별'은, 과거의 향수를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본인이 그렇지 않다면... 그냥 마음을 비우고 읽으시라. 버벡이 귀여워질 것이다. =D
덧: 버벡은 범죄자에게 쿨한 엄친아... 하지만 내 여자에게는 따뜻하겠지. 우왕?! -ㅁ-
덧 2: 남편 말로는 모여라 꿈동산 방영분 중에 이안 플레밍 원작의 '치티치티 뱅뱅'이 있었는데, 거기에 검은별 일당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는 원작이 이안 플레밍인줄 알았단다) 게다가 태연하게 검은별 주제가를 부르고 있었다고. 응? 뭐가 이상하냐고? 아시다시피 (모르신다면 검색해서 보시다시피) 검은별 주제가는 다음과 같이 끝난다.
'세상을 조롱하는 검은별이라 해도, 언젠가는 잡히고야 말거야~♪'
...검은별 일당은, 자기 입으로 자기들이 잡힐 거라고 천연덕스럽게 노래를 불러대는 모지리 악당 집단인가, 아니면 하극상을 몸소 실천하는 권력욕에 눈먼 범죄자들의 모임인가... -_-;;; (설마 그럴 리는 없고, 거기에는 물론 이런저런 어른의 사정들이 있었겠지만서도)
덧 3: ...정작 근데 난 검은별 가면이랑 '전형적인 영국풍 탐정옷'을 입은 바베크를 빼고는 기억이 안 난다... -ㅅ-
# by | 2009/10/20 03:04 | My Culture | 트랙백(1) | 덧글(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제목 : 검은별
-원제: The Black Star -저자: 존스턴 매컬리 -역자: 원은주 -출판사: (주)페이퍼하우스 모험을 즐기는 젊은 백만장자 로저 버벡은 어느 날 저녁에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다가 최근 도시를 불안에 떨게 만드는 수수께끼의 괴도 검은별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똑똑한 사람이 집중하여 사건을 수사한다면 검은별을 체포하는 건 일도 아니라고 호언장담한 버벡의 자신감에 흥미를 느낀 검은별은, 대담하게도 버벡이 잠든 한밤중에 부하를 보내 도......more
저도 그런데 왜 저는 그런 분들이 없을까요... 아, 이 사교성 문제 ㅠ^ㅠ
그러면 받고 난 다음 다시 글 남기겠습니다. >ㅅ<;;
명색이 리뷴데ㅡ 책사진 한 장이라도 안 보여주시는 겁니까^^
저는 단행본이어서 한번에 끝난 케이스인데, 시사인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정말로 정기구독이 가능할지도요?! O_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