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7월 07일
요즘 생각하는 잡상 중 하나.
전제:
1. 깁니다. 꽤 깁니다. 정말 깁니다.
2. 삽질이 다량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3. 안 보고 넘어가셔도 평상시에 절 상대하시는데 별 문제 없습니다. (쓴웃음)
그래도 보시려면 CLICK
나는 꽤나 자책을 잘 하는 성격이라, 남들이 보아도 아무렇지 않은 일에 '미안해' 라고 이야기하는 게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다만 그와 반대로 내가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는 꽤나 감정적이고 격하게 화를 낸다. 얼마 못 가긴 하지만 화를 내는 그 순간에는 세 배 빨라서, 내가 어지간히 틀리지 않은 이상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
지난 번, 내가 결혼할 때 물심양면으로 고생했던 선배 결혼식을 당일 오전에 문자로 알렸다는 이유로 13년쯤 알고 지내온 친구와 매우 크게 다투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남다른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이라서 자주 나가지는 않아도 나름대로 친분은 있었고, 동기 여자애들이 나 포함 셋이어서 어느정도는 돈독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던 차여서 더 크게 번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튼, 선배는 결혼 사실을 달랑 홈페이지에만 공지해 놓았고, 나는 그 홈페이지를 가뭄에 콩 나듯 들어갈까 말까 하는 상태였다. 반면 친구는 이곳에 무척 자주 드나드는 편이라 나는 당연히 이 녀석이 알면 내게도 미리 말해주겠거니 하고 있었다. 결정적인 건 이 선배가 프로포즈를 하는데 장소가 우리집 근처라서 내게 손을 빌려달라 전화도 한 적이 있었기에 더욱 그렇게 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 프로포즈날 갔으면 확실히 들었을 테고 알람이라도 맞춰놨을 테니 잊지도 않았겠지만 무슨 이유였는지 선약이 있어서 가질 못했다)
가까운 사람들은 이미 귀가 따갑게 들었을 일이지만, 내가 그걸 안 것은 먼저 잡은 스케줄을 취소할 수 없는 상황이자 결혼식 시작 30분 전이었다. 문자는 오전 9시에 도착해 있었지만 토요일 기상시간이 평균 오후 1시인 사람에게는 문자 따위 수신이 될 리가 만무. 당연히 '이 사람 결혼식은 가서 축의금 직접 내고 얼굴 보고 하겠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아직 결혼식장에 도착하지 않은 동기 B양에게 전화를 해서 화를 내니 '그걸 나한테 잘못했다고 하면 어쩌냐'는 등으로 답변 회피. 자기는 A양이 전화하래서 한 것 뿐이었다고. 연락이 안 된 건 네쪽 아니었냐고 한다. 알았다, 못 간다로 대충 마무리를 짓고 문제 발생자인 A양에게 전화를 해 보니 안 받는다. 그나마 연락처를 아는 사람 중에 평상시에 연락을 자주 하고 거기 갔을만한 선배에게 전화해 보니 자기는 데스크에서 접수를 받고 있고, A양은 사진 찍느라 바쁘단다. 지나가던 A양을 불러 전화를 바꿔달랬더니 자기는 바쁘다고 신경질을 내고, 미리 좀 알려주지 그랬냐는 말에 아침 9시에 전화 안 받은 건 내 책임이 아니냔다. 게다가 사진 찍는지 어쨌는지 하면서 신경질 잔뜩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끊고 사라졌다. 분명히 그 이면에는 '홈페이지에 공지 해놨는데 달랑 자기 필요할 때만 들어와서 보고 그 이후로는 발걸음도 안하는 동기 녀석에 대한 미움'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래, 그건 내 잘못 맞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내 쪽에서 더 이상 친해질 수 없는 선이라는게 분명히 존재하는 그룹의 홈피에 자주 들려서 도배성 글을 올리는 건 내 취향이 아니라는 걸 알 정도로 이 녀석과 내가 친분이 없었던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 거기에 결혼 이후에 집들이니 답례 식사니 뭐니 하나도 하지 않은 서운함이 겹쳐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그 녀석은 내게 연락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평상시에도 별 일이 없는 안부전화의 경우에는 내가 전화하는 횟수가 월등히 높은 편이었으니 내가 안 하면 될 리가 없다)
당시 내 기분은 시쳇말로 '이 모임 안에서 완전히 씹혔다' 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집들이 안하면 안하냐고 찔러주기라도 한다든가(물론 셋집인데다가 사람 모일 자리도 없어서 좀더 큰집으로라도 옮기고 나면 하겠다고 했을 것이겠지만) 어떻게 지내냐든가 하는 안부 인사는 그렇다고 쳐도, 모임 내에서 매우 큰 역할을 도맡아 했던 선배 결혼식이라면, 적어도 동기들간에 미리 연락은 해주는 게 인지상정이 아닌가 하는 게 (지금도) 내 가치관이었다. (겪어봤지만) 신랑 신부는 당연히 그 기간에 어떻게 시간이 지나가는 지 모르기 때문에 그들에게 화가 난 것은 절대로 아니다. 보통 이런 일의 경우 친구들이 알음알음으로 알려주기 마련인데 이번 경우에는 그런 게 아예 없었다는 것에 대해, 내가 완전히 씹힌 게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평상시에 왕래가 아예 없는 누구누구같았다면 모르겠지만, 연락처 다 알고 있고 나름대로 친분도 깊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난 이런 것에 매우 민감하고, 무척 화를 낸다)
후일에 당일 전화를 받아주었던 선배는 내가 화가 난 걸 알고 풀어주려고 노력을 했지만 내가 화가 난 게 그 사람이 아닌지라 걍 당사자랑 풀겠다고 그 얘기를 끊어버리고 말았다. 다만 그 당사자는 엠에센에 로그인해도 부를 생각도 안하고, 전화는 더더군다나 없었다. 이쯤 되면 냉전기간 및 버티기로 들어가는 상태여서 누가 이기나 끝까지 해보자는 심정이 되지 않는가. 게다가 나는 저쪽이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저쪽은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해서 화를 내는 것인 이상 더더욱.
그런데 얼마 전에 A양에게서 메신저가 왔다. 그때 결혼한 선배가 집들이를 하겠다고 연락을 했는데 유독 내게만 연락이 안 되더란다. 몇 마디 일상적인 대화 뒤에 '나 너에게 화난 거 있었다' 라고 얘기하니, 자기도 내게 화난 게 있었단다. 당시에 어딘가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던데다가 이런 거라면 차라리 오프라인에서 보고 얘기하자 싶어 나중으로 미루었는데, 이 놈이 그 짧은 대화 와중에 내게 칼을 세 번 꽂았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분명 내게 엄청나게 상처를 냈다. 다시 돌려 보면 기억이 나겠지만, 두 번 스트레스 받을 일은 안하는 게 좋다는 주의라 포기한다) 그리고 그 마지막 칼은 '시간이 나면 연락해서 한번 보자. 네가 취직했으니 시간이 날지 모르겠지만' 는 투였다.
당일날, (바보같지만) 그걸 되씹으면서 또 울었다. 나름대로 친하다고 믿고 있었는데 배신감이 들어서였을까. 그동안 내가 힘들어서 손 뻗을 때마다 해줬던 모든 말이 다 헛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다. 만날 때마다 잘났다 잘났다 칭찬해주는 녀석인지라 그동안은 그냥 그러려니 했었는데, 그게 전부 다 빈말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사람이 얼마나 미치는지 깨달았다. 더불어 이 녀석이 내게 힘들다고 손 뻗었던 기억은 한 번도 없었으면서(주변 사람들, 특히 선배들에게는 이런저런 이야기 잘 하면서) 나만 죽어라 이 녀석에게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댔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때 느끼는 이 불공평한 기분이란. 마치 이놈은 저 위에서 '아이구 불쌍한 녀석' 이라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고, 난 그 밑에서 징징대기만 하는 어린애가 된 기분이었다.
...뭐, 내가 그동안 이 녀석에게 삐진 걸 꼽자면, 애들같지만, 한도 없다. 선배들이랑은 연락도 잘 하고 잘 지내는 반면 동기들에게 연락하는 건 손으로 꼽을 정도라든가, 내가 먼저 전화하기 전까지는 거의 연락이 없다든가, (결정적인 건) 10년 넘게 내 결혼식 때는 자기가 사진 찍어주겠다고 했으면서 당일날 아무것도 안 해주었다든가 (...아프다고 했고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다른 선배들 때는 어김없이 카메라니 비디오니 들고 나타났던 걸 기억 못 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아울러 그때는 괜찮다고 했지만, 여자들의 '괜찮아'는 '이해는 해. 근데 사실은 안 괜찮아'랑 동의어일 때가 많다. 그리고 그때는 솔직히 후자였다) 사실 이런 일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삐지거나 화난 것보다 '사회적으로 봤을 때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삐지거나 화난 쪽이 더욱 힘이 크기 때문에 집들이를 안 하고 홈페이지에 안 들어가서 본 내 쪽이 잘못이 크다(고 본인도 생각하고 있으니 사실은 할 말이 없다. 다만 나는 그 녀석에게 인간적으로 매우 화가 났을 뿐이다)
선배네 집들이에는 결국 안 갔다. 밤새워 축구경기를 보며 응원한다는데, 남편만 놔두고 나가기 싫었던데다가 그 사람들과 밤샘 축구경기를 볼 만한 신경줄이 안 되어서이기도 하고, 분명히 가면 당일날 그녀석과 그 문제에 대해서 잔뜩 싸우거나 냉전 상태로 지내고 올 것이 뻔한데 괜히 가서 분위기 망치고 싶지 않았다.
연상력이 너무 좋은 관계로 요즘도 그 녀석과 연관된 무언가를 보면 자꾸 생각이 나버린다. 만나서 결판을 지으면 될 게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온라인에서 칼 세 방 맞으니 더이상 연락할 기분도 안 난다고 말해주고 싶다 ㄱ-; 게다가 내가 해야 할 것을 안 했다는 죄책감이 자꾸 고개를 들고 있는 반면, 이번만은 먼저 고개숙이기를 죽어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도 같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런 건 '누가 나쁜 아이인가'를 인정하면 지는 거랑 똑같은 거라서. (양비론 따위는 접수할 수 없으므로 더더욱 힘든.) 나는 원군 따위 없는 상황에서, 페널티를 안고, 자기가 자각하지 못하지만 상대에게 칼날을 난사하는 상대방과 싸울 수 있을 정도로 강심장이 아니다.
인간관계라는 건 매우 미묘한 것이다. 자주 만나서 자주 부딛히는 것이 첫 번째의 조건이 되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상대방과 주고받은 감정적인 빚 수치(혹은 저쪽에게 받은 감정과 내가 준 감정의 대차대조)가 적당히 +와 -를 이루는 것 역시 첫 번째 조건 못지 않게 중요하다. 내가 상대방과 관계를 맺으며,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감사하거나 미안한 마음을 지고 있다면 정상적인 인간관계가 어렵게 된다. 이 경우에는 어쩔 수 없다. 나는 상대방에게 감정의 공을 퍼주어야 하는데, 상대방이 나를 향해 던지는 감정의 공이라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나는 자꾸만 상대에게 '감정의 빚'을 지게 된다. 채무자와 채권자 사이에 정상적인 관계가 성립되기 어려운 것처럼, 이건 정상적인 인간관계로 유지되기가 어렵다. (특히 내 경우에는)
반대로 상대방이 나에게 일방적으로 감사하거나 미안해한다면, 내 경우에는 받은 만큼 져주면 그만이다. 무언가 부탁을 한다거나, 저쪽이 거절할 만한 무언가를 (일부러는 아니지만) 만든다든가, 내 얘기를 그만큼 많이 한다든가 하면 된다. 나는 상대에게 '네가 이러이러한 것을 해 주어 고맙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빚을 져주거나 감정의 공을 던지면 된다. (그리고 어차피 나란 놈은 냅두면 얘기 많이 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이건 매우 쉽다 -_-)
...내가 상대방을 찔러 감정을 받아내는 방법을 모르는 건지도 모른다. 혹은 찔러봤자 나올 게 없거나, 찔러도 소용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형편없는(어이)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요즘 문득문득 떠오르는 이 상황은 내게 스트레스를 잔뜩 안겨주고 있으며, 해결되기 전까지는 아무래도 그 상태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지만 해결 난이도가 매우 높아서 울고 있는 수준이다. (노 로딩 게임에서 막판 보스에 대해 어떠한 사전정보도 없이 HP 50% 미만으로 입장하는 기분이랄까 -_-)
젠장.
난 이래서 '내가 생각하는 친근함'과 '상대가 생각하는 친근함'이 차이나는 걸 싫어한다. 양쪽이 차이나면 (그리고 내 쪽이 더 높으면) 언젠가 한 번은 큰 일 터지게 되어 있다는 걸 예전부터 너무 많이 몸으로 깨달았다. 이제는 더 이상 내 쪽의 수치를 높여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건은 좀 짜증날 정도로 오래된 (게다가 선택의 범위가 매우 적은 가운데에서 맺은) 관계여서 내가 크게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일 한번 겪을 때마다 수명이 10년은 줄어드는 거 같다.
심장에 절대로 좋을 리 없는데. 젠장.
추가적인 사담: 나는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이 매우 작은 사람이지만, 영역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그들이 특별한 잘못을 하지 않는 이상 감정적 수치를 적당히 유지하며 지낼 수 있다. 영역 안과 밖에 있는 사람들의 차이점이란 그저 연락의 빈도가 하루 한 번이냐, 삼 개월에 한 번이냐, 육 개월에 한 번이냐, 일년에 한 번을 넘다 못해 삼 년당 두 번으로 세는 게 빠를 정도냐의 수준이다. 감정적인 부분들에 대한 것은 그것과 별개의 것으로, 나란 놈은 삼 년에 두 번 연락을 하는 사람도 하루에 세 번 이상 얼굴을 봐야 하는 사람보다 친하게 생각할 수 있는 놈이다. (실제로 일본에 있는 모 친구는 연락하는 시기가 반년에 한 번이 될까말까 하지만 감정적 수준은 다른 누구 못지 않게 높은 편이다. 빚 수준에 있어서 동등하기도 하고... 딴소리지만 얼굴이나 보러갈까 orz) 나랑 친해지는 법이라는 건 은행 대출과 비슷하지만 방법론에 있어 더욱 간단한 것으로, 나한테 무언가 잔뜩 해달라고 하거나 (내가 들을 기분이 됐을 때) 나랑 같이 앉아서 내 얘기 하는 만큼 자기 얘기를 잔뜩 늘어놓는 것이 가장 속 편하다. 이 빌어먹을 놈의 친정엄마 기질이란.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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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깁니다. 꽤 깁니다. 정말 깁니다.
2. 삽질이 다량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3. 안 보고 넘어가셔도 평상시에 절 상대하시는데 별 문제 없습니다. (쓴웃음)
그래도 보시려면 CLICK
나는 꽤나 자책을 잘 하는 성격이라, 남들이 보아도 아무렇지 않은 일에 '미안해' 라고 이야기하는 게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다만 그와 반대로 내가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는 꽤나 감정적이고 격하게 화를 낸다. 얼마 못 가긴 하지만 화를 내는 그 순간에는 세 배 빨라서, 내가 어지간히 틀리지 않은 이상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
지난 번, 내가 결혼할 때 물심양면으로 고생했던 선배 결혼식을 당일 오전에 문자로 알렸다는 이유로 13년쯤 알고 지내온 친구와 매우 크게 다투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남다른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이라서 자주 나가지는 않아도 나름대로 친분은 있었고, 동기 여자애들이 나 포함 셋이어서 어느정도는 돈독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던 차여서 더 크게 번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튼, 선배는 결혼 사실을 달랑 홈페이지에만 공지해 놓았고, 나는 그 홈페이지를 가뭄에 콩 나듯 들어갈까 말까 하는 상태였다. 반면 친구는 이곳에 무척 자주 드나드는 편이라 나는 당연히 이 녀석이 알면 내게도 미리 말해주겠거니 하고 있었다. 결정적인 건 이 선배가 프로포즈를 하는데 장소가 우리집 근처라서 내게 손을 빌려달라 전화도 한 적이 있었기에 더욱 그렇게 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 프로포즈날 갔으면 확실히 들었을 테고 알람이라도 맞춰놨을 테니 잊지도 않았겠지만 무슨 이유였는지 선약이 있어서 가질 못했다)
가까운 사람들은 이미 귀가 따갑게 들었을 일이지만, 내가 그걸 안 것은 먼저 잡은 스케줄을 취소할 수 없는 상황이자 결혼식 시작 30분 전이었다. 문자는 오전 9시에 도착해 있었지만 토요일 기상시간이 평균 오후 1시인 사람에게는 문자 따위 수신이 될 리가 만무. 당연히 '이 사람 결혼식은 가서 축의금 직접 내고 얼굴 보고 하겠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아직 결혼식장에 도착하지 않은 동기 B양에게 전화를 해서 화를 내니 '그걸 나한테 잘못했다고 하면 어쩌냐'는 등으로 답변 회피. 자기는 A양이 전화하래서 한 것 뿐이었다고. 연락이 안 된 건 네쪽 아니었냐고 한다. 알았다, 못 간다로 대충 마무리를 짓고 문제 발생자인 A양에게 전화를 해 보니 안 받는다. 그나마 연락처를 아는 사람 중에 평상시에 연락을 자주 하고 거기 갔을만한 선배에게 전화해 보니 자기는 데스크에서 접수를 받고 있고, A양은 사진 찍느라 바쁘단다. 지나가던 A양을 불러 전화를 바꿔달랬더니 자기는 바쁘다고 신경질을 내고, 미리 좀 알려주지 그랬냐는 말에 아침 9시에 전화 안 받은 건 내 책임이 아니냔다. 게다가 사진 찍는지 어쨌는지 하면서 신경질 잔뜩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끊고 사라졌다. 분명히 그 이면에는 '홈페이지에 공지 해놨는데 달랑 자기 필요할 때만 들어와서 보고 그 이후로는 발걸음도 안하는 동기 녀석에 대한 미움'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래, 그건 내 잘못 맞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내 쪽에서 더 이상 친해질 수 없는 선이라는게 분명히 존재하는 그룹의 홈피에 자주 들려서 도배성 글을 올리는 건 내 취향이 아니라는 걸 알 정도로 이 녀석과 내가 친분이 없었던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 거기에 결혼 이후에 집들이니 답례 식사니 뭐니 하나도 하지 않은 서운함이 겹쳐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그 녀석은 내게 연락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평상시에도 별 일이 없는 안부전화의 경우에는 내가 전화하는 횟수가 월등히 높은 편이었으니 내가 안 하면 될 리가 없다)
당시 내 기분은 시쳇말로 '이 모임 안에서 완전히 씹혔다' 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집들이 안하면 안하냐고 찔러주기라도 한다든가(물론 셋집인데다가 사람 모일 자리도 없어서 좀더 큰집으로라도 옮기고 나면 하겠다고 했을 것이겠지만) 어떻게 지내냐든가 하는 안부 인사는 그렇다고 쳐도, 모임 내에서 매우 큰 역할을 도맡아 했던 선배 결혼식이라면, 적어도 동기들간에 미리 연락은 해주는 게 인지상정이 아닌가 하는 게 (지금도) 내 가치관이었다. (겪어봤지만) 신랑 신부는 당연히 그 기간에 어떻게 시간이 지나가는 지 모르기 때문에 그들에게 화가 난 것은 절대로 아니다. 보통 이런 일의 경우 친구들이 알음알음으로 알려주기 마련인데 이번 경우에는 그런 게 아예 없었다는 것에 대해, 내가 완전히 씹힌 게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평상시에 왕래가 아예 없는 누구누구같았다면 모르겠지만, 연락처 다 알고 있고 나름대로 친분도 깊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난 이런 것에 매우 민감하고, 무척 화를 낸다)
후일에 당일 전화를 받아주었던 선배는 내가 화가 난 걸 알고 풀어주려고 노력을 했지만 내가 화가 난 게 그 사람이 아닌지라 걍 당사자랑 풀겠다고 그 얘기를 끊어버리고 말았다. 다만 그 당사자는 엠에센에 로그인해도 부를 생각도 안하고, 전화는 더더군다나 없었다. 이쯤 되면 냉전기간 및 버티기로 들어가는 상태여서 누가 이기나 끝까지 해보자는 심정이 되지 않는가. 게다가 나는 저쪽이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저쪽은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해서 화를 내는 것인 이상 더더욱.
그런데 얼마 전에 A양에게서 메신저가 왔다. 그때 결혼한 선배가 집들이를 하겠다고 연락을 했는데 유독 내게만 연락이 안 되더란다. 몇 마디 일상적인 대화 뒤에 '나 너에게 화난 거 있었다' 라고 얘기하니, 자기도 내게 화난 게 있었단다. 당시에 어딘가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던데다가 이런 거라면 차라리 오프라인에서 보고 얘기하자 싶어 나중으로 미루었는데, 이 놈이 그 짧은 대화 와중에 내게 칼을 세 번 꽂았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분명 내게 엄청나게 상처를 냈다. 다시 돌려 보면 기억이 나겠지만, 두 번 스트레스 받을 일은 안하는 게 좋다는 주의라 포기한다) 그리고 그 마지막 칼은 '시간이 나면 연락해서 한번 보자. 네가 취직했으니 시간이 날지 모르겠지만' 는 투였다.
당일날, (바보같지만) 그걸 되씹으면서 또 울었다. 나름대로 친하다고 믿고 있었는데 배신감이 들어서였을까. 그동안 내가 힘들어서 손 뻗을 때마다 해줬던 모든 말이 다 헛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다. 만날 때마다 잘났다 잘났다 칭찬해주는 녀석인지라 그동안은 그냥 그러려니 했었는데, 그게 전부 다 빈말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사람이 얼마나 미치는지 깨달았다. 더불어 이 녀석이 내게 힘들다고 손 뻗었던 기억은 한 번도 없었으면서(주변 사람들, 특히 선배들에게는 이런저런 이야기 잘 하면서) 나만 죽어라 이 녀석에게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댔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때 느끼는 이 불공평한 기분이란. 마치 이놈은 저 위에서 '아이구 불쌍한 녀석' 이라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고, 난 그 밑에서 징징대기만 하는 어린애가 된 기분이었다.
...뭐, 내가 그동안 이 녀석에게 삐진 걸 꼽자면, 애들같지만, 한도 없다. 선배들이랑은 연락도 잘 하고 잘 지내는 반면 동기들에게 연락하는 건 손으로 꼽을 정도라든가, 내가 먼저 전화하기 전까지는 거의 연락이 없다든가, (결정적인 건) 10년 넘게 내 결혼식 때는 자기가 사진 찍어주겠다고 했으면서 당일날 아무것도 안 해주었다든가 (...아프다고 했고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다른 선배들 때는 어김없이 카메라니 비디오니 들고 나타났던 걸 기억 못 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아울러 그때는 괜찮다고 했지만, 여자들의 '괜찮아'는 '이해는 해. 근데 사실은 안 괜찮아'랑 동의어일 때가 많다. 그리고 그때는 솔직히 후자였다) 사실 이런 일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삐지거나 화난 것보다 '사회적으로 봤을 때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삐지거나 화난 쪽이 더욱 힘이 크기 때문에 집들이를 안 하고 홈페이지에 안 들어가서 본 내 쪽이 잘못이 크다(고 본인도 생각하고 있으니 사실은 할 말이 없다. 다만 나는 그 녀석에게 인간적으로 매우 화가 났을 뿐이다)
선배네 집들이에는 결국 안 갔다. 밤새워 축구경기를 보며 응원한다는데, 남편만 놔두고 나가기 싫었던데다가 그 사람들과 밤샘 축구경기를 볼 만한 신경줄이 안 되어서이기도 하고, 분명히 가면 당일날 그녀석과 그 문제에 대해서 잔뜩 싸우거나 냉전 상태로 지내고 올 것이 뻔한데 괜히 가서 분위기 망치고 싶지 않았다.
연상력이 너무 좋은 관계로 요즘도 그 녀석과 연관된 무언가를 보면 자꾸 생각이 나버린다. 만나서 결판을 지으면 될 게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온라인에서 칼 세 방 맞으니 더이상 연락할 기분도 안 난다고 말해주고 싶다 ㄱ-; 게다가 내가 해야 할 것을 안 했다는 죄책감이 자꾸 고개를 들고 있는 반면, 이번만은 먼저 고개숙이기를 죽어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도 같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런 건 '누가 나쁜 아이인가'를 인정하면 지는 거랑 똑같은 거라서. (양비론 따위는 접수할 수 없으므로 더더욱 힘든.) 나는 원군 따위 없는 상황에서, 페널티를 안고, 자기가 자각하지 못하지만 상대에게 칼날을 난사하는 상대방과 싸울 수 있을 정도로 강심장이 아니다.
인간관계라는 건 매우 미묘한 것이다. 자주 만나서 자주 부딛히는 것이 첫 번째의 조건이 되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상대방과 주고받은 감정적인 빚 수치(혹은 저쪽에게 받은 감정과 내가 준 감정의 대차대조)가 적당히 +와 -를 이루는 것 역시 첫 번째 조건 못지 않게 중요하다. 내가 상대방과 관계를 맺으며,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감사하거나 미안한 마음을 지고 있다면 정상적인 인간관계가 어렵게 된다. 이 경우에는 어쩔 수 없다. 나는 상대방에게 감정의 공을 퍼주어야 하는데, 상대방이 나를 향해 던지는 감정의 공이라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나는 자꾸만 상대에게 '감정의 빚'을 지게 된다. 채무자와 채권자 사이에 정상적인 관계가 성립되기 어려운 것처럼, 이건 정상적인 인간관계로 유지되기가 어렵다. (특히 내 경우에는)
반대로 상대방이 나에게 일방적으로 감사하거나 미안해한다면, 내 경우에는 받은 만큼 져주면 그만이다. 무언가 부탁을 한다거나, 저쪽이 거절할 만한 무언가를 (일부러는 아니지만) 만든다든가, 내 얘기를 그만큼 많이 한다든가 하면 된다. 나는 상대에게 '네가 이러이러한 것을 해 주어 고맙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빚을 져주거나 감정의 공을 던지면 된다. (그리고 어차피 나란 놈은 냅두면 얘기 많이 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이건 매우 쉽다 -_-)
...내가 상대방을 찔러 감정을 받아내는 방법을 모르는 건지도 모른다. 혹은 찔러봤자 나올 게 없거나, 찔러도 소용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형편없는(어이)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요즘 문득문득 떠오르는 이 상황은 내게 스트레스를 잔뜩 안겨주고 있으며, 해결되기 전까지는 아무래도 그 상태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지만 해결 난이도가 매우 높아서 울고 있는 수준이다. (노 로딩 게임에서 막판 보스에 대해 어떠한 사전정보도 없이 HP 50% 미만으로 입장하는 기분이랄까 -_-)
젠장.
난 이래서 '내가 생각하는 친근함'과 '상대가 생각하는 친근함'이 차이나는 걸 싫어한다. 양쪽이 차이나면 (그리고 내 쪽이 더 높으면) 언젠가 한 번은 큰 일 터지게 되어 있다는 걸 예전부터 너무 많이 몸으로 깨달았다. 이제는 더 이상 내 쪽의 수치를 높여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건은 좀 짜증날 정도로 오래된 (게다가 선택의 범위가 매우 적은 가운데에서 맺은) 관계여서 내가 크게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일 한번 겪을 때마다 수명이 10년은 줄어드는 거 같다.
심장에 절대로 좋을 리 없는데. 젠장.
추가적인 사담: 나는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이 매우 작은 사람이지만, 영역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그들이 특별한 잘못을 하지 않는 이상 감정적 수치를 적당히 유지하며 지낼 수 있다. 영역 안과 밖에 있는 사람들의 차이점이란 그저 연락의 빈도가 하루 한 번이냐, 삼 개월에 한 번이냐, 육 개월에 한 번이냐, 일년에 한 번을 넘다 못해 삼 년당 두 번으로 세는 게 빠를 정도냐의 수준이다. 감정적인 부분들에 대한 것은 그것과 별개의 것으로, 나란 놈은 삼 년에 두 번 연락을 하는 사람도 하루에 세 번 이상 얼굴을 봐야 하는 사람보다 친하게 생각할 수 있는 놈이다. (실제로 일본에 있는 모 친구는 연락하는 시기가 반년에 한 번이 될까말까 하지만 감정적 수준은 다른 누구 못지 않게 높은 편이다. 빚 수준에 있어서 동등하기도 하고... 딴소리지만 얼굴이나 보러갈까 orz) 나랑 친해지는 법이라는 건 은행 대출과 비슷하지만 방법론에 있어 더욱 간단한 것으로, 나한테 무언가 잔뜩 해달라고 하거나 (내가 들을 기분이 됐을 때) 나랑 같이 앉아서 내 얘기 하는 만큼 자기 얘기를 잔뜩 늘어놓는 것이 가장 속 편하다. 이 빌어먹을 놈의 친정엄마 기질이란.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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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6/07/07 02:40 | ChatterBox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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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제보다는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은 게 사람이지. 혼자 속상해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안 해도 될 생각 사실이 아닌 억측으로 상처를 헤집기보다는, 주변의 믿을 수 있고 널 아껴주는 사람에게 상의해서 기분을 풀도록 해. 안 그래도 신경줄 가느다란 녀석이^^:
비공개님 2006-07-07 13:01/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ㅠㅠ